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세요.
6.25를 청소년기에 겪으셨지요.
레드-콤플렉스도 가지고 계시기도 해서, 한나라당 열혈 지지자를 자처하시지요. 이건 다른 얘기지만.
아버지가 어렸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가난하셨기에 변변한 먹을 거리가 없었다고 해요.
애지중지 토끼 한 마리를 키우셨는데, 어느 날 집안에 손님이 온 이후론 볼 수 없었다고 해요. 흔한 얘기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동물을 키우지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저희 남매를 늦게 보셨어요.
마흔이 훌쩍 넘어 낳은 자식들이 원하는 건 뭐든 해주고 싶어하셨죠.
초등학교 때였을 거에요, 누나와 전 개를 키우고 싶으니, 사달라고 졸라댔어요.
다른 때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결단코 반대하셨어요. 함부로 정 주면 안 된다고.
커 갈수록 동물엔 관심이 없었어요.
가끔 친구의 집에 있는 개들을 마주하기도 했지만,
쓰다듬거나 감탄사를 내뱉지 않았어요. 나오지도 않았고.
그리고 26살이 되었어요.
친구가 고양이를 선물했지요. 정확히는 곤란한 처지 탓에 떠 넘긴 것이 맞겠지만.
노란 줄무늬의 2개월도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였어요.
처지가 곤란한 아기 고양이와 친구도 돕고,
연로하신 아버지의 낮 시간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야말로 일석이조라 판단한 것이지요.
문제라면 평소 아버지는 고양이를 싫어하셨어요.
보통의 어른들 반응처럼요.
무작정 집으로 가져왔어요.
아버지는 생각만큼 거부하시지는 않으셨어요.
눈이 무섭다, 징그럽다, 의뭉스럽다 등등 뭐라 뭐라 하셨지만, 싫은 기색은 아니었어요.
작고 귀여운 수컷 고양이는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전 `아사야’라는 이름을 주었어요. 작고 독립적인 소년으로 자라라는 마음으로.
아버지는 `아사야’라는 이름 대신 `나비’라고 부르시더군요.
그렇게 작고 귀엽던 수컷 고양이는 무럭무럭 자라 세 살이 되었어요.
이젠 고양이라는 말이 민망할 만큼, 거대한 괴물이 되어있지요.
`아사야’도 `나비’도 아닌 `나방’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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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는 서교동에 위치한 가정집을 개조한 2층 건물이에요.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배도, 농땡이도 피울 수 있는 회사지요.
작년 유월이었어요.
더워지는 계절 탓에 옥상을 올라가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동네에 워낙 길고양이가 많이 다녀서, 밖에서 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올라간 옥상에서 아기 고양이가 놀라 도망치는 모습을 목격한 거에요.
2층짜리 건물 옥상에 홀로 있는 아기고양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요.
이해할 수 없어도, 눈으로 봤으니 믿는 수 밖에요.
저희 회사 옆과 뒤로는 오피스텔과 다세대 주택이 있어요.
혼자 유추한 바로는 아마 누군가가 창문으로 버린 것 같았어요.
어미 고양이도 올라올 수 없는 높이인데다, 주변에 디딜만한 것도 없고.
옥상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짬뽕에 들어있을 만한 해삼과 쭈꾸미도 보이고, 싸구려 프레스햄도 있는 걸 보면. 확신할 수 있었어요.
삼색 얼룩이인 옥상고양이는 그렇게 저희 회사 옥상에서 삶을 시작했어요.
`나방’이 쓰던 화장실과 모래를 가져오고, 대용량 사료를 하나 주문했어요.
차양막 겸 비 가리개를 단 나무 상자를 만들어, 집도 마련해줬지요.
여기서 원기 회복해서, `발정 날 나이가 되면 알아서 나가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관계는 나쁘지 않았어요. 저는 후원자 노릇을 충실히 했고, 옥상고양이는 나날이 커갔어요.
모래가 떨어지면, 나방이 쓰던 모래를 집에서 공수해 왔어요.
한가지 원칙이 있었다면, 만지지 말자는 것 이었어요.
물론 옥상고양이도 저의 손을 허락하지 않았고요.
제법 긴 시간이었어요.
올해 3월까지였으니까요. 9개월이었네요.
겨울이 지나고, 녀석은 발정이 온 것 같아 보였어요.
울어대기 시작했지요. 인근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왔어요.
사무실로 찾아온 주민들에게 사과를 했지요.
이래 저래해서 이렇게 되었고, 방법을 강구하겠다.
사실 방법은 없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전 옥상고양이의 용단을 바랬어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봄의 기운이 물씬 나기 시작하던 어느 날,
옥상에 올라가 변을 치우기 위해 화장실을 뒤적거리고 있었어요.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옥상고양이가 난간에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짧게 두 번 울고는 뛰어내렸어요.
그렇게 옥상고양이는 길고양이가 되었어요.
그리고 한동안 볼 수 없었어요.
가끔 1층 주차장에 사료를 놓았지만, 얼룩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들이 양껏 배채우고 사라졌어요.
그리고, 6월쯤 야근하고 퇴근하는 길에 얼룩이를 볼 수 있었어요.
자그마한 체구에 정신 없는 얼룩덜룩, 여전하더군요.
노변에 난 풀을 뜯어먹고 있었지요.
짠 한 마음에 가방에 있던 천하장사 몇 개를 잘게 잘라 던져 줬어요.
이걸 좋아했었거든요.
그 후에도 볼 수 없었어요.
8월이 되기 전 까지는.
8월이 되자, 얼룩이는 자주 보였어요.
저희 회사 근처로 생활터를 옮긴 것 같았어요.
반가운 마음에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사료와 물을 놓기 시작했어요.
얼룩이는 매일 오후에 계단으로 찾아와서 밥을 먹고 일광욕을 양껏 즐기다 사라졌지요.
가끔 밥이 없으면 문 앞에 까지 와서 울기도 했어요.
반가웠어요.
그런데 저번 주부터 놓아 둔 사료가 줄어들지 않았어요.
일 하다가 창 밖을 보면 어슬렁대긴 하는데, 이상하게 계단으로 올라서진 않았어요.
왜 그럴까 궁금해서 녀석이 사라지는 골목에 밥을 놓아두었지만,
엄한 놈들이 다 먹어 치우더군요.
그리고, 어제 저녁 미팅을 위해 분주히 나가다가 얼룩이를 보았어요.
옆 오피스텔의 쓰레기더미에서, 비닐봉지에 들어있었어요.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혼란스러운 뒷다리와 꼬리, 유독 작은 발을 보며 얼룩이임을 확신했어요.
당황스러웠어요.
오늘 아침, 여전히 쓰레기 더미 위, 검은 봉지에서 녀석의 발이 보였어요.
봉지를 안았더니, 파리가 윙윙거리며 도망치네요.
몰래 회사 바로 옆 건물 나무 밑에 땅을 파고 얼룩이를 묻었어요.
누구의 말처럼 세 번째는 아니 만나는 게 좋았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